아주 먼 옛날, 세상의 모든 희미한 가능성들이 잠들어 있던 새벽녘이 있었습니다. 그 하늘에는 붓을 든 거인이 살고 있었죠. 그의 붓은 닿는 곳마다 희미한 빛을 흩뿌리며, 이제 막 시작될 하루의 풍경을 빚어냈습니다. 거인의 붓끝은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는 새의 날갯짓,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떨림,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의 첫 빛줄기까지. 이 덧없이 짧은 순간들은 거인의 붓에 의해 거대한 캔버스 위에 고유한 색채로 채색되었습니다. 마치 덧없는 꿈결 같았지만, 그 찰나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거인의 붓질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인이 붓질을 멈추자 덧그려진 그림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타까워하며 그는 거인에게 물었습니다.
“존경하는 거인이시여, 어찌하여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원히 남기지 않으십니까?”
거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찰나의 미덕이란다. 덧없이 사라지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지. 하지만 붓질이 멈춘다고 해서 그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거인은 붓을 들어 그의 가슴을 가리켰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덧없이 사라졌던 찰나의 순간들이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캔버스 위에 덧그려졌던 그림의 잔상이자, 새로운 그림을 그릴 밑거름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습니다.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찰나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놓쳐버린 기회라 여기며 후회하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그 가치를 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덧없는 순간들이 바로 우리 삶의 캔버스를 채워가는 귀한 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그 찰나들이 모여 우리의 내일을 빚어냅니다. 찰나의 순간들을 놓쳤다 해도, 그 기억과 경험은 우리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웁니다. 붓의 거친 움직임이 아닌, 섬세한 덧칠 하나하나가 모여 명작을 만들듯, 우리 삶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찰나를 덧그려 나가는 것이다. –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