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무채색’이라는 이름의 화가가 살았습니다. 그의 붓 끝에서는 어떤 색도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푸른 하늘도, 붉은 장미도, 노란 해바라기도 그의 캔버스 위에서는 흑백으로만 존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무채색 화가는 묵묵히 붓을 놀릴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어귀에 작은 요정 ‘색동이’가 나타났습니다. 색동이는 무채색 화가의 텅 빈 캔버스를 보며 물었습니다.
“화가님, 어째서 캔버스가 이리도 쓸쓸한가요?”
무채색 화가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습니다.
“내게는 색을 담는 마음이 사라진 듯하오. 붓을 들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소.”
색동이는 빙그레 웃으며 무채색 화가의 붓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붓끝에서 투명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캔버스 위에 옅은 무지갯빛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색깔이에요. 당신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눈빛은 언제나 세상을 가장 먼저 담아내고 있었답니다.”
그때부터 무채색 화가는 색동이의 도움으로 잊었던 색을 하나씩 되찾았습니다. 하늘을 볼 때는 맑고 깊은 푸른색이, 꽃을 볼 때는 생기 넘치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붓끝을 따라 흘러내렸습니다.
결국 무채색 화가는 다시금 세상에서 가장 다채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잊고 있던 색깔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도 때로는 무채색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세상을 담아내는 고유한 빛깔과 감성이 숨 쉬고 있습니다.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주변의 작은 변화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잃어버렸던 삶의 색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색깔들이 모여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이 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캔버스와 같아서, 그것이 선한 것에 의해 채색되느냐 악한 것에 의해 채색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에드먼드 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