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해발이 높은 산자락에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두 명의 노인이 살았습니다. 한 명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현자였고, 다른 한 명은 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느라 분주한 학자였습니다.
현자는 매일 아침, 마을을 가로지르는 험준한 산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늘 같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래된 샘터였죠. 샘터까지 가는 길은 돌부리가 많고 험하여 발을 헛디디기 쉬웠습니다.
어느 날, 학자가 현자를 만났습니다. 학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어찌 그리 매일 같은 길을 힘겹게 걸으십니까? 제가 보아하니, 길을 조금만 더 평탄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더 빠르고 쉬운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할 듯합니다. 저는 밤낮으로 이 길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현자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젊은이, 나는 길을 평탄하게 만들거나 더 쉬운 길을 찾으려 애쓰지 않네. 나는 다만, 내 발밑에 있는 돌들을 잘 살피고 피할 뿐이지.’
학자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돌을 피하는 것이요? 그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현자는 걸음을 멈추고 학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다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 처음부터 걸어야 하네. 때로는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에 영영 도달하지 못하기도 하지. 나는 똑똑하게 길을 고치거나 새로운 길을 만들기보다는, 내가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안전한지를 살피는 것에 집중하네. 그래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지.’
그 말을 들은 학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 방법만을 연구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돌’ 즉, 어리석은 선택과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함정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똑똑해지기’ 위해, ‘더 많은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복잡한 전략을 세우려 합니다. 하지만 찰리 멍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듯, **찰리 멍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똑똑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바보 같은 짓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빨리 성공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직장에서는 승진을 위해, 재테크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인간관계에서는 타인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급해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조급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곤 합니다. 섣부른 투자로 큰 손실을 보거나, 감정적인 말로 소중한 관계를 망치거나, 타인과의 비교에 지쳐 번아웃을 겪기도 합니다.
현자의 지혜처럼, 때로는 복잡한 해결책을 찾기보다, 우리 앞에 놓인 명백한 ‘돌’ 즉, 어리석은 선택과 후회를 불러올 수 있는 행동들을 회피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실패로 증명된 길을 굳이 가지 않거나, 감정적인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똑똑해지려는 노력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리석은 실수를 피하는 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