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왕국의 가장 높은 탑 꼭대기에는,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작은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새는 매일 아침, 왕국 안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새는 한 번도 성벽 밖 세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새에게 성벽은 세상의 끝이자,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국을 방문한 현명한 노인이 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탑 꼭대기로 올라가 새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매일 이곳에서만 노래하느냐.’ 새는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 성벽이 제 세상의 끝입니다. 저는 이 높은 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날개가 있지 않느냐.’ 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날개는 있지만, 저 높은 벽을 넘을 만큼 높이 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날아올라도 벽에 부딪힐 뿐입니다.’
노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너는 벽을 직접 넘으려 했지, 벽 너머를 보려 하지 않았다.’ 노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새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벽을 따라 내려가 보아라. 벽의 틈새를 찾아보아라. 혹은 벽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네 노래를 들려주어라.’
새는 노인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새는 날개를 펴고 벽을 향해 날아올랐지만, 역시나 벽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포기하지 않고, 벽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성벽의 오래된 틈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틈새는 좁았지만, 새는 몸을 웅크리고 조심스럽게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는 처음 보는 드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새는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는 왕국 안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가능은 바보들의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단어다.’**
우리는 때때로 저 작은 새처럼, 자신 앞에 놓인 ‘성벽’에 갇혀 버립니다. 직장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 앞에서 ‘이건 불가능해’라고 단정 짓고, 새로운 도전에 ‘내가 할 수 있을 리 없어’라며 주저합니다.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에 휩싸여 ‘나는 안 돼’라고 스스로를 가두기도 합니다. 혹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될까’라며 절망합니다. 번아웃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포기하려 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이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한계일 뿐입니다.
새가 벽을 넘기 위해 벽을 따라 내려갔듯, 우리는 때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상사의 지적에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배움’이라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 대신, ‘나의 성장’에 집중하며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성벽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좁아지고 기회는 사라집니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고, 벽을 따라 내려가거나, 틈새를 찾거나, 혹은 벽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혜를 발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불가능’도 어쩌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충분히 ‘가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