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넓고도 깊은 강이 흐르는 땅에 욕심 많은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영토를 흐르는 강물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강물은 쉼 없이 흘러 바다로 향했습니다. 왕은 이 귀한 강물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강을 막을 거대한 댐을 짓도록 명령했습니다. 수년이 흘렀습니다. 댐은 완성되었지만, 왕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댐에 막힌 강물은 넘쳐흘러 댐을 위협했고, 왕은 혹시나 댐이 무너질까 밤낮으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는 댐을 더욱 높이 쌓고, 더 두껍게 만들라 명하며 끊임없이 강물의 흐름을 억지로 붙잡으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왕은 늙고 지혜로운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노인은 강가에서 조용히 물수제비를 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왕은 노인에게 자신의 근심을 털어놓았습니다. ‘보시오, 이 강물이 쉼 없이 흘러가니 내 것이 되지 못하오. 나는 이 강물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고 싶소.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강물은 흘러가 버리는구려.’
노인은 잠시 물수제비질을 멈추고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잔잔한 호수 같았습니다. 노인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폐하, 강물은 흐르도록 태어났습니다. 흐르지 않는 강물은 썩은 물이 될 뿐입니다. 폐하께서 붙잡으려 하시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과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머물지 않습니다.’
왕은 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라니, 내가 말하는 것은 저 맑은 강물이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수제비질을 시작했습니다. ‘폐하,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고, 강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강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흐르지 않는 물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은, 곧 썩어버릴 물을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억지로 멈추려 하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고 덧없이 흘러가 버릴 뿐입니다.’
왕은 노인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댐을 쌓느라, 강물을 붙잡으려 애쓰느라 수많은 날들을 허비했고, 정작 강물이 주는 풍요로움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댐을 더 높이 쌓는 대신, 강가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강물을 이용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의 짧은 휴식 속에서, 혹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사무실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고 있습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남들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타인의 삶, 그리고 결국 우리를 덮치는 번아웃까지. 우리는 마치 왕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움켜쥐려 애쓰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관계를 맺고,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멈춰진 시간을 갈망하는 대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