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을 기다리는 어리석음, 방주를 짓는 지혜

아주 먼 옛날, 거대한 산맥 아래 자리한 작은 왕국에 현명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신중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왕은 늘 하늘을 살피며 혹시 모를 재앙을 예견하려 애썼습니다. 그의 눈은 맑은 날의 푸른 하늘과 희미한 구름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는 것이 왕의 의무이니, 혹시라도 먹구름이 몰려오면 즉시 알려라.’

왕국 변두리, 숲이 시작되는 언덕에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목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처럼 하늘을 점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매일 꾸준히 거대한 통나무들을 베어내고 다듬으며 무언가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업장은 언제나 톱질 소리와 망치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늙은 목수의 이야기를 전하자, 왕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 늙은이는 대체 무엇을 짓고 있기에 저리도 열심인가? 먹구름이 몰려올 기미는 아직 없는데.’

시간이 흘러, 왕은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며 혹시 모를 비바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당황하여 신하들을 불러 외쳤습니다. ‘비가 오려 한다! 대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신하들은 허둥지둥 왕의 명을 따르려 했지만, 재빠르게 대비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묵묵히 무언가를 짓던 늙은 목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대한 뼈대가 튼튼하게 세워져 있었고, 그 위로 촘촘한 널빤지들이 엮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배, 방주였습니다.

마침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왕국은 삽시간에 물에 잠겼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하지만 늙은 목수는 이미 튼튼하게 완성된 방주에 몸을 실어 안전하게 폭우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손짓했습니다. ‘왕이시여, 어서 이곳으로 오십시오.’

모든 것이 잠잠해진 후, 왕은 늙은 목수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미리 알았단 말이오? 나는 하늘만 바라보았거늘.’ 늙은 목수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워런 버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가 올 것을 예측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왕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늘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맞든 틀리든,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느끼는 열등감, 그리고 과도한 경쟁 속에서 번아웃을 겪는 현대인들은 마치 먹구름이 몰려올까 노심초사하는 왕과 같습니다. 우리는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혹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러지’라는 자책 속에 머무르곤 합니다. 하지만 늙은 목수의 방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예측이 아니라, 다가올 어려움에 묵묵히 대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주’를 짓는 일입니다. 그것은 꾸준한 자기계발일 수도 있고, 건강한 습관일 수도 있으며, 굳건한 정신력일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미리 튼튼한 집을 짓고,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워런 버핏이 말한 방주를 짓는 지혜일 것입니다. 불안이라는 먹구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방주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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