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햇살이 부서지는 푸른 초원에 마음씨 고운 은퇴한 궁수 하나가 살았습니다. 그는 한때 왕의 명궁이었으나, 이제는 평화로운 은둔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늘 늙고 병든 말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말은 수년 전 전투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뛰지도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궁수에게 그 말을 팔거나 놓아주라고 권했지만, 그는 늘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 말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지. 이제는 늙고 병들어 짐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곁을 지켜준 벗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궁수는 매일 아침, 늙은 말을 위해 신선한 풀을 베어주고 깨끗한 물을 떠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말은 점점 더 쇠약해졌고, 궁수의 시간과 에너지는 말에게만 쏟아졌습니다. 그는 점점 더 지쳐갔고, 한때 날카롭던 그의 눈빛에는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그는 더 이상 활시위를 당기며 바람을 가르는 상쾌함을 느끼지 못했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여유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을 거닐던 현명한 노인이 그의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지쳐 보이는 궁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대는 왜 그리 힘들어하는가?’ 노인이 물었습니다.
궁수는 늙은 말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늙은 말 때문이오. 그를 돌보는 것이 나의 의무 같소. 하지만 이젠 나를 너무 지치게 하오.’
현명한 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것을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 더 큰 평화를 가져다줄 때가 있네. 그대는 이 늙은 말을 놓아줌으로써, 그동안 말에게 쏟았던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이네. 그러면 다시 활기찬 삶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궁수는 노인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며칠 밤낮을 고민한 끝에, 그는 늙은 말을 자신이 가장 아끼는 넓은 들판에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늙은 말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따뜻한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말을 놓아준 날 저녁, 궁수는 오랜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그는 다시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명상을 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맑은 정신으로 숲을 산책하며 새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고, 그의 삶에 잔잔한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나발 라비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나은 관계, 더 완벽한 모습까지.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쫓는 것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를 옭아매는 것들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 마음에도 없는 대인 관계, 성공에 대한 조급함,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한 번아웃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원치 않는 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늙은 말처럼, 이미 짐이 되어버린 관계나 상황을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의리라고, 책임이라고, 혹은 그냥 익숙함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짐들은 우리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방해합니다. 마치 궁수가 늙은 말 때문에 삶의 활력을 잃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발 라비칸트의 지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짐 중에, 사실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놓아주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고, 더 큰 행복으로 이끌지는 않는지. 때로는 과감하게 원치 않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공간과 에너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