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시절의 무역 분쟁을 떠올리면, 한국이 필수 소재를 자체적으로 마련한 과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2년에서 3년에 걸쳐 국산화에 성공했고, 그 성과가 산업 전반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중국 없는 시장에서의 경험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했다.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란의 문제는 신정 체제와 관련된 권리 제한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국의 시민 혁명과는 성격이 다르다. 같은 ‘시위’라는 단어로 묶기엔 배경과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도 주목해볼 만하다. 자민당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중국과의 갈등을 이용하는 듯한 측면이 있고, 특정 여론 수치(자민당 지지율 75% 이상)는 그런 정치적 계산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이런 내부 정치의 변화가 외교·경제적 파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관찰하게 된다.
지정학적 환경이 바뀌면서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입지가 달라졌다. 군사적 위협은 과거와 비교해 줄어들었고, 국산화로 쌓은 산업 경쟁력은 코스피와 원화 가치 같은 시장 지표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앞으로 한국의 중간자적 지위를 국제 무대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계속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