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근거로 두 회사의 멀티플이 4에서 5 수준으로 TSMC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제시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 비교 이상의 해석이 필요하다. 멀티플은 기대 이익과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만큼, 투자자들이 향후 이익 개선 가능성을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 사이에 영업이익 추정치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업을 놓고서도 전망치가 널뛰는 상황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지만, 반대로 서로 다른 시나리오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격차가 좁혀지면 멀티플 재평가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현재 시점에서 시가총액을 보면 삼성전자 300조, SK하이닉스 200조로 합산 약 500조 수준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장 수요 구조도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서버·PC가 주된 수요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AI 서버가 핵심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AI 서버로의 수요 전환은 제품 구성과 가격 체계, 고객사와의 계약 방식까지 변화를 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LTA(장기 공급계약)가 도입되면서 공급 가시성이 개선된 점은 긍정적인 변화로 읽힌다.
LTA는 단기적 가격 변동에 대한 노출을 줄여주고, 고객사와의 관계를 안정화해 장기적 수요 예측을 용이하게 만든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생산 계획과 CAPEX 배분을 더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LTA가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계약 조건과 가격 연동 방식에 따라 기업별 성과 차이는 남을 것이다.
정책 리스크로는 관세 문제가 있다. 관세는 원칙적으로 수출업자가 아닌 수입업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관세 부과는 현지 수입업체의 비용 구조와 최종 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기업의 수익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수출단가가 동일하게 유지되더라도 최종 수요자 쪽에서 가격 민감도가 바뀌면 판촉이나 마진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관세 정책의 방향성은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제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는 HBM과 범용 D램의 수익성 차이가 주목된다. 범용 D램은 가격이 매월 갱신되는 구조여서 수요·공급에 따라 비교적 빠르게 수익성이 반영된다. 반면 HBM은 설계 난도와 제조 수율 문제로 인해 초기에는 불량률이 높을 수 있다. 예컨대 HBM의 수율이 70% 수준이라는 점은 생산 단가와 수익성에 직결되는 변수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HBM 비중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범용 D램의 생산 확대를 검토하는 쪽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다만 AI 서버 수요의 지속성과 HBM에 대한 시장의 수요 구조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이 전략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생산 포트폴리오 결정은 수요 예측, 수율 개선 속도, 계약 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시장 관점에서 보면 환율과 코스피, 섹터별 파급 효과를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환율은 관세와 연계돼 한국 기업의 실질 수익성에 영향을 주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가 흐름은 코스피 지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 AI 서버 수요 증가로 관련 산업 전반에 긍정적 파급이 기대되는 한편, 미국의 관세 도입 가능성과 HBM 수율 같은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 당장 관찰할 지점은 몇 가지다. 첫째, 두 회사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둘째, AI 수요의 지속성 및 고객사들의 구매 패턴. 셋째, LTA가 얼마나 널리 확산되는지와 그 계약 조건의 실질적 내용. 넷째, 미국 쪽 관세 정책의 변화 여부와 그 파급 효과. 마지막으로 범용 D램 생산 확대 여부와 HBM 수율 개선 속도를 주의 깊게 보면, 향후 주가 재평가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관찰로는,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기회’로 읽히려면 위의 불확실성 몇 가지가 해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수요의 고착성, LTA의 확실성, 그리고 수익성 지표의 일관된 개선이 필요하다. 그 전까지는 저평가 논리와 리스크 요인이 공존하는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