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했던 두 명의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행자였고, 다른 한 명은 ‘염려’라는 이름의 늙은 여행자였습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걸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희망은 걷는 내내 발밑에 핀 들꽃을 보며 노래했습니다. 거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치면, ‘그래, 이 바람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라며 웃었습니다. 굶주림이 찾아오면, ‘이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야지’라며 주변을 살폈고, 결국 딱딱한 뿌리를 캐내어 허기를 달랬습니다. 가파른 절벽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튼튼한 나뭇가지를 찾아 손잡이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염려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아, 저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의 앞날도 캄캄하구나’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 바람에 휩쓸려 길을 잃으면 어쩌지’라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굶주림이 찾아오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굶어 죽을지도 몰라’라며 절망했습니다. 가파른 절벽을 마주하면, ‘이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겠어. 여기서 멈추는 게 차라리 나을 거야’라며 주저앉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산맥을 넘었지만, 희망은 굽이치는 길 위에서 별을 보며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염려는 험난한 길 위에서 넘어진 자신을 보며 좌절했습니다. 결국 산맥을 넘어 도착한 세상은 같았지만, 그들이 마음에 품은 풍경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희망은 웃으며 새로운 땅을 바라보았고, 염려는 떨며 뒤돌아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그림자를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염려의 그림자에 갇혀 있는가.
**윈스턴 처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위기와 기회가 뒤섞인 시대를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라 여기며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역량을 키울 절호의 기회’라며 의욕을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는 ‘이 관계가 끝났다’고 비관할 수도 있지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성공 때문에, 혹은 타인과의 비교 때문에 조급함과 불안함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가 닿기를 바랍니다. 번아웃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두 여행자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당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절벽은 넘어야 할 산이 될 수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면,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개의 그림자 중, 당신은 어떤 그림자를 따라 걸을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