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용기, 죽음보다 어려운 선택

옛날 옛적, 푸르른 숲의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 늙은 현자 한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지혜는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늘 두 개의 낡은 붓을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하나는 칠흑같이 검은 먹으로 붓끝이 날카로운 붓이었고, 다른 하나는 맑은 물로만 붓끝을 적시는 붓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왜 현자가 죽은 듯 고요한 검은 붓과, 생명력 넘치는 맑은 물 붓을 함께 지니고 다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 큰 가뭄이 닥쳤습니다. 샘물은 말라붙고, 밭의 곡식은 타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현자가 나섰습니다. 그는 검은 붓을 들고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이 붓은 우리가 맞닥뜨릴 가장 큰 시련, 곧 죽음의 그림자를 상징하오. 우리는 때로 피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 용감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하오.’ 사람들은 숙연해졌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용기는 숭고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자는 다시 맑은 물 붓을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붓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을 상징하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며 다시 일어나야 하는 날들. 이 삶의 붓으로 우리는 희망을 그리고, 사랑을 칠하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어야 하오. 이 맑은 물 붓으로 덧칠하고, 닦아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용기가 때로는 죽음 앞에서의 용기보다 훨씬 더 큰 고통과 싸워야 하는 것이오.’

그는 덧붙였습니다. ‘가장 큰 시련 앞에서 굳건히 버티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옳은 길을 선택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포용하는 용기는 더욱 어렵고 귀한 것이오. 검은 붓은 한순간의 결단을 요구하지만, 맑은 물 붓은 매 순간의 고뇌와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오.’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현자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절망 앞에서 용감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삶의 무게와 고뇌 속에서 어떻게 용기를 내야 하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 로슈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기는 죽음뿐만 아니라 삶 앞에서도 필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용감해야 한다고 되뇌었던가. 하지만 정작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현실은 어떠한가.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지시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익숙한 안정을 버릴 용기,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용기. 이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필요한 용기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용기를 요구합니다.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에 휩싸여 자신을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삶. 번아웃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비명을 지를 때, 우리는 과연 삶이라는 붓으로 희망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붓을 놓아버린 채, 덧칠할 기력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삶의 용기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현자가 쥐고 있던 맑은 물 붓은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붓으로 덧칠하고, 닦아내고, 희망과 사랑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보다 더 고단할 수 있는 삶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용기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은 어떤 색으로 칠해지고 있습니까?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