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함의 길, 어리석음을 피하는 데서 시작되다

옛날 옛적, 세상의 모든 지혜를 탐하고 싶어 했던 젊은 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고서에 파묻혀 지식을 쌓았고, 어려운 철학을 탐구하며 깨달음을 얻고자 애썼습니다. 그의 목표는 찬란한 지혜의 봉우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나은 이해를 추구하며, 그의 머릿속은 끊임없이 지식으로 채워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빛나는 현자’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마을 구석에는 ‘늙은 어리석음꾼’이라 불리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우는 것을 싫어했고, 굳이 애써 똑똑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바보 같은 짓’만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섣불리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삼갔으며, 탐욕이나 질투 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고, 위험한 구덩이를 피해 안전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늘 평온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젊은 현자는 여전히 새로운 지식을 갈망했지만, 때로는 자신이 배운 것들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해야 할지 몰라 좌절했습니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들에 얽히기도 했고, 때로는 그 지식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알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를 깨닫고 괴로워했습니다.

반면 늙은 어리석음꾼은 여전히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현자처럼 복잡한 이론을 논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에는 후회나 큰 시련이 없었습니다. 그는 굳이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고, 헛된 욕망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았으며,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깊은 학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피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현자는 늙은 어리석음꾼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며 현자가 되려 하지만, 때로는 길을 잃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신 듯한데, 어찌 그리 평온하고 지혜로워 보이십니까?’

늙은 어리석음꾼은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습니다. ‘젊은이여, 나는 똑똑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네. 다만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지.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끝없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바보 같은 짓을 피하는 것은 그 산의 험준한 절벽을 피해 평탄한 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어느 쪽이 더 쉬운지는 자네도 알겠지.’

찰리 멍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바보 같은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 쉽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성과와 인정을 갈망하며, 때로는 동료와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은 우리를 섣부른 투자나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SNS 속 타인의 화려한 모습에 현혹되어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번아웃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은 어리석음꾼의 지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무조건 똑똑해지거나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먼저 어리석은 행동, 후회할 만한 선택, 자신을 해치는 습관들을 경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충동적인 소비를 자제하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잡는 것.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혜의 첫걸음은, 화려한 지식의 봉우리를 맹목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발밑의 어리석음이라는 구덩이를 피해 안전하고 평탄한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느덧 우리는, 배우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삶의 지혜를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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