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깊고 푸른 숲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젖줄 역할을 하는 맑은 강물은 늘 생명력 넘치게 흘러갔고, 강가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갔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강가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바위였습니다.
이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면 흙탕물이 튀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리며, 때로는 강물이 범람하여 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위는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강물은 바위에 부딪혀 휘돌아 흘러가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바위여, 왜 그리도 움직이지 않는가? 세상을 보며 흐르는 나를 따라 너도 자유로워지라.’
바위는 강물의 속삭임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칭찬도, 비난도, 심지어 무관심한 시선조차 바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바위는 어떤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어떤 경험에도 자신을 내맡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굳건히, 혹은 무기력하게,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강물은 더 먼 곳으로 흘러가 새로운 풍경을 만났지만, 바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숲을 지나던 현자가 바위를 보며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는 바위의 굳은 모습에서 깊은 슬픔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판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현자는 바위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 바위는 비판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강물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바위는 오롯이 자신만의 고립 속에서 멈춰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칭찬받지도, 비난받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어떤 성장이나 변화도 겪지 못한 채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바위처럼 살아가곤 합니다. 직장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에 상처받을까,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까, 성공에 대한 조급함에 실수할까 두려워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에 안주하며,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소진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움츠립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판을 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는 비판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 방법이 가져올 허무함 또한 암시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비판으로부터 안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삶이라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즐거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기쁨, 그리고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때로 비판과 마주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법입니다. 멈춰선 돌이 아닌, 흐르는 강물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