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빚는 정원사

아주 먼 옛날, 푸른 산자락 아래 작은 마을에 엘리아스라는 이름의 정원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꽃을 가꾸는 데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엘리아스의 손길이 닿은 정원은 언제나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했고, 향긋한 내음이 마을 전체를 감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아스의 정원을 보며 감탄했고, 그에게 시간만 있다면 자신도 저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늘 바빴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 질 녘까지 밭을 갈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 과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햇볕에 그을린 흔적과 함께 깊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엘리아스를 보며 ‘참 부지런하다’고 칭찬했지만, 그의 삶이 오롯이 노동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가장 현명한 노인이 엘리아스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엘리아스, 자네는 평생 이렇게 땀 흘려 일만 할 텐가? 자네가 가꾼 아름다운 꽃들을 마음껏 감상하고,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날은 언제 오는가?’

엘리아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꽃을 가꾸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 손이 멈추면 정원도 멈추고, 곧 황폐해질 것입니다. 제 시간은 오직 이 흙과 꽃을 위해 존재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엘리아스, 자네는 꽃을 가꾸는 일에 온 마음을 다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정원을 가꾸는 법은 배우지 못했구나. 만약 자네가 씨앗을 심는 대신, 씨앗을 심어주는 기계를 만들거나, 물을 주는 파이프를 설치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자네는 더 이상 매 순간 흙을 만지지 않아도 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남은 시간으로 다른 아름다운 것을 심거나, 혹은 그저 앉아 꽃을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엘리아스는 노인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동이 곧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대신해 일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엘리아스는 꽃을 심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씨앗을 자동으로 뿌려주는 장치를 만들고,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아스는 예전처럼 매 순간 밭에 매달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남는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먼 곳의 책들을 읽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정원이 주는 평온함을 만끽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엘리아스처럼 매일 시간과 씨름하며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에 스트레스받고, 더 많은 돈과 성공을 향한 조급함에 번아웃을 느끼며,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엘리아스의 노인처럼, 우리를 대신해 일할 ‘자산’을 만드는 지혜를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꼭 거창한 사업이나 투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배우고 성장하여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 자신을 위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여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발 라비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로운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당신을 대신해 일할 자산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엘리아스처럼,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여 나를 대신해 ‘시간’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산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조급함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며,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자산’을 심고 있습니까? 그 자산은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빚어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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