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깊고 고요한 숲 속에 ‘보송’이라는 이름의 작은 토끼가 살고 있었습니다. 보송이는 다른 토끼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편이었고, 특히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숲의 현자인 늙은 부엉이가 보송이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작은 토끼야. 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나.’
보송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부엉이 할아버지, 저는 곧 닥쳐올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천둥이 울려 퍼지며,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거라고 해요. 제 작은 보금자리가 날아가 버릴까, 제가 추위에 떨게 될까, 또 맛있는 풀을 먹지 못하게 될까 걱정됩니다.’
부엉이가 보송이의 말을 묵묵히 듣고는, 떨리는 그의 몸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보송아, 네가 말하는 그 폭풍은 아직 오지 않았다. 구름은 아직 멀리 있고,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너는 지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존재하지 않는 고통을 미리 겪고 있는 것이구나.’
보송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제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떨립니다.’
부엉이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그래,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겪는 일이지. 닥쳐오지 않은 불행을 미리 그리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말이다.’
그때,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 위에서 부엉이가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고통보다 공포 때문에 더 많이 괴로워한다.’**
보송이는 부엉이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폭풍의 상상 속에서 떨고 있었지만, 정작 그는 비바람에 젖지도, 추위에 떨지도,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부엉이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말처럼, 그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그림자 앞에서 이미 자신의 마음을 고통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가오지 않은 직장 상사의 질책을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성공이나 돈에 대한 조급함에 사로잡혀 현재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칩니다. 타인과의 비교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끊임없는 걱정과 자책은 우리를 번아웃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마치 작은 토끼 보송이처럼, 우리는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네카의 말처럼, 진정한 고통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공포의 실체가 아니라, 그 공포를 미리 그려내는 우리의 마음속 상상일 때가 많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폭풍을 두려워하며 숲을 헤매기보다, 지금 여기, 발밑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