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형 조건을 들여다보면 해저 터널 기술의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뒤덮여 있고, 섬과 본토 사이를 가르는 바다는 그 자체로 물류의 복잡성을 키워왔다. 이러한 환경에서 해상과 해저를 연결하는 인프라는 단순한 교통 개선을 넘어 지역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고 느낀다.
역사는 오래된 과제와 희생을 함께 보여준다. 1930년대 통영 앞바다에서 동양 최초의 해저 터널이 시도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은 기술 진보와 비용, 안전 사이의 긴장 관계를 상기시킨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기술과 경험이 쌓이면서 같은 과제도 다른 방식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가대교와 보령 해저 터널을 떠올리게 된다. 거가대교는 단일 숫자로 표현되는 편익 이상으로 지역 간 접근성을 바꿨고, 그 경제적 편익은 6조 원 규모로 평가된다. 보령 해저 터널 역시 11년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지역경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긴 공사 기간이 남긴 교훈과 성과가 동시에 공존한다.
기술 측면에서 주목할 점은 TBM(터널 보링 머신) 관련 역량의 축적이다. 2012년 우리나라가 TBM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고, 이후 AI와 3D 자동화 시스템을 접목하면서 굴착 공법 자체가 변화를 맞았다. 이것이 단순한 장비의 개선을 넘어서 공사 효율과 안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기술 수출 가능성을 여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효과는 몇 가지 경로로 연결된다. 물류비 절감은 환율과 무역수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관련 기업들의 프로젝트 수주와 실적 개선은 코스피 등 주식시장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동시에 해양공학·건설 분야의 성장으로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산업 생태계가 확장되는 가능성도 있다.
다만 리스크도 명확하다. 해저 공사는 극한의 작업 환경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면 외부 변수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남는다. 또한 해양 생태계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속 가능한 인프라 전략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과제다.
지금 주목할 지점은 몇 가지다. 울산에서 진행 중인 해저 공간 창출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 K하이퍼튜브 같은 신기술의 상용화 가능성, 그리고 해저 터널 기술의 해외 수출 성과가 그것이다. 이들 흐름이 결합될 때 우리나라가 단순한 시공국을 넘어 인프라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지 가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술적 성과와 경제적 파급력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라고 본다. 과거의 희생과 오랜 기간의 투자, 그리고 최근의 자동화·AI 도입까지를 종합하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지만 동시에 책임도 커졌다. 당장은 프로젝트별 성과와 안전 관리, 장기적으로는 해외 수출과 생태계 보전이라는 두 축을 함께 챙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