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거 전환기마다 기회를 포착하며 성장해왔다. 전후 복구를 시작한 1945년 이후 산업화를 추진했고, 1985년 플라자 합의 직후에는 일본의 조선업 점유율이 37%로 후퇴하는 사이 한국은 33%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사례는 외부 충격이 항상 위협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적절히 대응하면 상당한 이득으로 바뀔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1990년대 초반에는 중국의 경제 성장과 연계된 수출 확대가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었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4%에서 25%로 빠르게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중간재 공급자로 자리잡으며 동반 성장했다. 이 경험은 공급망에서의 위치와 제품 경쟁력이 어떻게 국가 경제 성과로 연결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다른 국면에 서 있다. AI 혁명과 안보 문제가 맞물리며 제조업의 가치가 다시 부상하는, 이른바 역(逆) 스마일 커브의 시대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난도 하드웨어 제조 능력이 중요해졌고, 그 점에서 한국은 자유 진영에서 유일하게 주목받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이런 구조적 변화는 산업 구성과 경쟁지형에 실질적 영향을 준다.
시장의 채널별로 보면 환율은 과거처럼 제품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후퇴 당시와 마찬가지로 통화와 가격 경쟁력의 변화는 수출 구조와 산업 점유율을 바꾼다. 코스피 측면에서는 제조업 강세가 기업 실적과 투자 심리에 긍정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 제조업의 가치 재평가가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섹터별로는 AI와 안보 수요에 부응하는 고난도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정밀기계·특수소재 등 높은 기술장벽과 생산능력을 요구하는 업종이 중심에 설 확률이 높다. 이러한 산업 집중은 관련 공급망과 연관 산업에도 파급 효과를 미치며, 기업들의 전략과 정책 대응 방향에도 영향을 준다.
물론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 감소와 내수 시장 축소는 장기적으로 수요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내수가 위축되면 기업들의 성장 엔진이 외부 수출이나 기술 혁신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정책적·제도적 대응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도라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주목할 지점들도 분명하다. 우선 AI 혁명이 제조업에 어떤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즉 자동화와 고부가가치 전환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글로벌 경제의 흐름과 미중 갈등의 전개가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와 무역·투자 경로에 어떤 제약이나 기회를 주는지도 관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프트파워의 강화와 기술 혁신을 위한 R&D 투자는 연결된 이야기다. 문화·콘텐츠·브랜드 역량은 국가 이미지와 시장 접근성에 기여하고, 기술 경쟁력은 산업적 기반을 지탱한다. 이 둘이 균형을 이루면 외부 충격을 기회로 바꾸는 역량이 더 강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변화가 과거와 닮아 있는 동시에 다르다고 본다. 외부 환경이 주는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지만, 이번에는 기술과 안보가 결합된 복합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준비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 단순한 낙관이나 비관을 넘어서, 어떤 산업에 어떤 방식으로 역량을 집중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