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푸른 산자락 아래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두 명의 현자가 살고 있었는데, 한 명은 늘 높은 곳에 올라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관조하는 것을 즐기는 ‘먼 곳의 현자’였고, 다른 한 명은 언제나 마을 사람들 틈에 끼어 그들의 삶 속에서 웃고 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가까운 곳의 현자’였습니다.
어느 날, 먼 곳의 현자가 자신의 언덕 위 초소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가 질 무렵, 노을빛에 물든 논밭에서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하고,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멀리서 보니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하는 농부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고, 저녁놀을 배경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생이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가까운 곳의 현자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낡은 옷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방금 마을의 어느 집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병으로 잃고 슬픔에 잠겨 있었고, 다른 집에서는 빚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곳곳에서 들려오는 곡소리와 탄식, 그리고 희망 대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저 멀리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숨겨진 고통과 시련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먼 곳의 현자는 가까운 곳의 현자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대는 왜 그리 지쳐 보이는가? 저 멀리서 본 마을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답지 않은가?’
가까운 곳의 현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그림을 봅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그림을 이루는 수많은 붓질과 덧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화가의 고뇌와 눈물을 보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희극처럼 보일지라도, 그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땀과 눈물, 그리고 쓰라린 시련들이 얽혀 있는 비극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찰리 채플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SNS 속 타인의 화려한 모습이나 언론에 비친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며 부러워하고 조급해합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수많은 경쟁 속에서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며, 번아웃의 벼랑 끝에 서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의 현자가 말했듯이, 그들의 삶 또한 겉으로 보이는 희극 뒤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통, 그리고 외로운 싸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잠시 멈추어 우리 자신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하고 넘어지기에,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것이고,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멀리서 보이는 남의 삶에 현혹되지 말고, 가까이서 마주하는 나의 현실 속에서 작은 기쁨과 희망을 찾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은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그래서 더욱 진실되고 아름다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