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

옛날 옛적, 깊은 산골짜기에 해묵은 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젊은 시절, 숲에서 가장 높이 솟아 햇볕을 독차지하던 꿈을 꾸었으나, 거센 바람과 척박한 땅에 시달리며 어느덧 앙상한 가지를 늘어뜨린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는 늘 싱그러운 새싹을 틔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젊은 나무들이 재잘거렸습니다. ‘이제 와서 뭘 하겠어’, ‘내 뿌리는 이미 깊이 박혔는데’라며 늙은 나무는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어느 날, 숲을 다스리는 현명한 부엉이가 늙은 나무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그대의 가지는 왜 그리 처져 있는가?’ 늙은 나무는 쓸쓸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늙었고, 나의 시절은 지나갔소.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소?’ 부엉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아직 알지 못하는구나. 그대의 깊은 뿌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지, 그대의 옹이진 줄기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대가 숲의 가장 높은 곳에 닿지 못했을지라도, 그대의 존재 자체로 이 숲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생명인 것을.’ 그 말을 들은 늙은 나무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가장 높이 솟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늙은 나무는 매년 봄, 가장 먼저 돋아나는 연둣빛 잎사귀를 자랑하고, 그늘을 드리워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은 젊은 나무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조지 엘리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당신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되기에.’** 우리는 종종 늙은 나무처럼 스스로에게 한계를 긋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었어’, ‘나는 이미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어릴 적 품었던 꿈이나 젊은 날의 열정을 먼지 쌓인 상자 속에 넣어둡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개선을 망설이며 ‘이 나이에 뭘 배우겠어’라고 자포자기하거나,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에 하루하루를 소진하며 ‘나는 이미 틀렸어’라고 단정 짓기도 합니다. 친구들의 빛나는 성공에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시작조차 못 했어’라고 좌절하거나, 번아웃에 지쳐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은 나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듯, 우리 안에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가능성과, 아직 펼쳐지지 않은 무한한 잠재력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혹은 과거에 어떤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서는 절대적인 장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데, 늦은 때란 없습니다. 관계 속에서 진심을 전하는 데, 늦은 때란 없습니다.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늦은 때란 없습니다.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될 수 있는 그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가장 늦지 않은, 가장 의미 있는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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