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명궁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활은 은빛으로 빛났고, 그의 화살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마저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명성을 듣고 그의 솜씨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활을 당겼지만, 그의 화살은 언제나 과녁을 빗나가거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의 명성은 점차 빛을 잃어갔습니다.
어느 날, 그는 깊은 산골짜기 외딴집에 사는 은둔 현자를 찾아갔습니다. 현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대의 활은 훌륭하고, 그대의 화살은 날카롭구나. 하지만 그대는 활을 쏘는 법을 아는 것과, 실제로 과녁을 맞추는 법을 아는 것이 같다고 생각하는가?’
명궁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는 활의 원리를 달달 외웠고, 바람의 방향과 거리 계산법 또한 완벽하게 익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는 현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활 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습니다.’
현자는 조용히 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에 나무가 하나 서 있구나. 그대의 화살이 저 나무를 맞출 수 있겠느냐?’ 명궁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거리를 측정하고, 바람을 계산하고, 활을 당길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자는 그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대는 아직 활을 쏘지 않았구나. 그대가 저 나무를 맞출 수 있다는 ‘앎’은 있지만, 그 앎을 ‘행함’으로 옮기지 않았으니, 진정한 앎이라 할 수 있겠느냐?’
명궁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화살의 무게, 활의 탄성, 바람의 세기 등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힘을 주어 당기고, 조준하고, 놓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현자의 가르침을 따라 매일 수백 번, 수천 번씩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처음에는 빗나가고, 때로는 힘이 부족했으며, 때로는 과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팔은 아팠고, 그의 손가락은 물집 잡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화살이 마침내 과녁 한가운데를 꿰뚫었습니다.
이때, 명궁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의 앎이 진정한 앎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왕양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앎과 행함은 하나다(지행합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앎’ 속에 살고 있는가. 직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앎’,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앎’, 건강해지고 싶다는 ‘앎’. 우리는 이미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해결책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함’은 어디에 있는가. 책상 위에 쌓인 자기계발서처럼,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지식은 진정한 앎이 아닙니다. 성공에 대한 조급함에 휩쓸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불안해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한 첫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번아웃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앎’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을 돌아볼 ‘행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명궁의 화살이 과녁을 맞추듯, 우리의 앎 또한 행동이라는 과녁을 정확히 겨눌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 당신의 앎을 행동으로 옮길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