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로 부르지 못한 왕의 슬픔

옛날 옛적, 번영으로 가득한 어느 왕국에 현명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사랑했고, 정의로운 통치를 펼쳤으며, 굽이치는 강물처럼 부드럽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왕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데 서툴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기쁨’을 ‘슬픔’이라 불렀고, ‘사랑’을 ‘미움’이라 불렀습니다. ‘희망’을 ‘절망’이라 칭했고, ‘진실’을 ‘거짓’이라 여겼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은 늘 왜곡되어 있었고, 신하들은 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내리는 명령을 따르려 애썼지만,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종종 곤경에 처했습니다.

한 번은 왕이 신하들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축하하자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풍요로운 수확’을 ‘흉년’이라 불렀습니다. 신하들은 왕의 말을 듣고 하늘을 보며 슬퍼했습니다. 곧이어 흉년이 닥쳤다는 소식이 퍼졌고,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풍요로운 수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흉년’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날,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아름다운 정원’을 ‘황량한 벌판’이라 불렀습니다. 정원사들은 왕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 대신 가시덤불과 잡초만을 심었습니다. 왕은 완성된 정원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왜 이렇게 황량한가’라며 탄식했지만, 그는 자신이 ‘황량한 벌판’이라는 이름을 ‘아름다운 정원’에 부여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왕은 늙어갔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현명하다고 믿었지만, 그의 왕국은 이름의 혼란 때문에 점차 빛을 잃어갔습니다.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고,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따르기보다는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습니다. 왕은 자신의 삶이 왜 이토록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궁궐의 가장 오래된 서고에서 낡은 두루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혜의 시작은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이다.’**

왕은 그 글귀를 읽고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자신이 ‘기쁨’을 ‘슬픔’이라 부르고, ‘사랑’을 ‘미움’이라 부르고, ‘희망’을 ‘절망’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 본질을 담지 못한 잘못된 이름을 붙여왔던 것입니다. 이름이 잘못되면 그 사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왜곡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저질렀던 수많은 오류를 되짚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왕비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의 대부분이 지나갔지만, 그는 남은 시간 동안 모든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기쁨’은 다시 ‘기쁨’으로, ‘사랑’은 ‘사랑’으로 불렸습니다. 왕국의 혼란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백성들은 왕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직장 상사의 칭찬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거나, 성공을 향한 조급함에 쫓겨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을 잔소리로 여기거나, 타인과의 비교 속에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번아웃을 겪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혹은 그 본질에 맞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좌절’이라 부르는 것이 사실은 ‘성장의 기회’일 수 있고, ‘실패’라 여기는 것이 ‘새로운 시작의 발판’일 수도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이라 여기는 것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지혜의 시작은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사물들, 감정들, 관계들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고, 그 본질에 맞는 이름을 붙일 때, 비로소 우리는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 진정한 평온과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의 슬픔을 통해 우리는 오늘, 우리 삶의 이름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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