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귀와 하나의 입, 숲의 현자가 남긴 지혜

옛날 옛적, 깊고 푸른 숲에 현명하기로 소문난 늙은 올빼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요’였지요. 숲의 동물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고요를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유독 바쁘게 뛰어다니는 다람쥐 한 마리가 헐떡이며 고요의 나무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다람쥐는 자신의 앞발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고요님, 제가 가진 도토리가 너무 적어요. 더 많은 도토리를 모으려면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그런데 옆집 다람쥐는 벌써 저만큼이나 모아놓은 것 같아요. 저도 빨리 저만큼, 아니 그 이상을 모아야 해요. 하루도 쉴 틈이 없어요.’

고요는 조용히 다람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크고 둥근 눈은 동요 없이 반짝였습니다. 잠시 후, 고요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습니다. ‘네가 가진 도토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구나. 그렇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혹시, 네가 왜 도토리를 모으는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있니?’

다람쥐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야, 겨울을 나기 위해서죠.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모으면 자랑스러울 테니까요.’

고요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네가 쉬지 않고 도토리를 모으는 동안, 너는 숲의 아름다운 꽃들을 보았니? 너의 친구들이 나누는 즐거운 이야기를 들었니? 혹은 네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은 있니?’

다람쥐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늘 무언가를 더 모으고, 더 빨리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남들의 도토리 덤이 얼마나 쌓였는지, 자신의 덤이 얼마나 넉넉한지만 신경 썼을 뿐,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세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요는 다시 한번 다람쥐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 숲에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단다. 하나는 세상이 너에게 들려주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네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이지. 네가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빨리 앞서 나가려 하면, 세상의 소리도, 네 안의 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단다.’

그때, 숲의 다른 동물들이 고요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다람쥐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늦게 도착한 토끼는 숲에서 만난 희귀한 버섯에 대해 이야기했고, 느긋한 거북이는 강가의 잔잔한 물결이 주는 평화로움에 대해 말했습니다. 다람쥐는 처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숲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 부드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많이 듣는 것이, 그리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입니다.

이 늙은 올빼미 고요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지혜를 전해 온 현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주었다. 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다람쥐처럼 세상의 성공과 성취에 대한 조급함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견만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동료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기 일쑤입니다. SNS 속 타인의 화려한 모습과 나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결국, 마음의 소리는 묻어버리고 번아웃이라는 깊은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두 개의 귀는 세상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선물입니다. 하나의 입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더 많이 듣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으며,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잠시 멈추어 숲의 현자처럼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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