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깊고도 깊은 숲에 두 마리의 다람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똑똑이’라 불렸고, 다른 한 마리는 ‘지혜’라고 불렸습니다. 똑똑이는 숲에서 가장 영리한 다람쥐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도토리를 찾았고, 험준한 바위도 능숙하게 뛰어넘었으며, 맹수의 발톱을 피해 숨는 방법에도 능했습니다. 숲에 나타나는 모든 위험은 똑똑이에게는 풀어야 할 흥미로운 문제였습니다.
어느 가을, 숲에 전에 없던 거대한 폭풍이 예고되었습니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사정없이 흔들어댔습니다. 똑똑이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나무 구멍을 찾아 폭풍을 버텨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주변을 샅샅이 뒤져 가장 깊고 넓은 구멍을 발견했고, 그 안을 도토리와 마른 잎으로 가득 채우며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이 정도면 어떤 폭풍도 두렵지 않아!’ 똑똑이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반면, 지혜는 폭풍 소식을 듣고도 똑똑이처럼 서둘러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숲의 가장자리, 거센 바람이 덜 부는 작은 언덕 아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은 이미 다른 동물들이 모여드는 아늑한 장소였습니다. 지혜는 똑똑이처럼 훌륭한 은신처를 찾거나 많은 양식을 비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조용히 다른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습니다.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똑똑이가 찾아낸 튼튼한 나무 구멍은 빗물이 새어 들어오고, 강한 바람에 나무 전체가 흔들려 안에서도 불안했습니다. 그는 좁은 구멍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맹렬한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 똑똑이는 흠뻑 젖은 채 구멍에서 나왔습니다. 주변은 엉망진창이었고, 그가 애써 모아둔 도토리도 일부 쓸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사했습니다. 그때, 그는 언덕 아래에서 태연하게 나오는 지혜를 보았습니다. 지혜는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고, 주변 동물들과 함께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 지혜는 이미 숲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먹이를 찾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똑똑이는 의아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는데, 너는 무엇을 했기에 멀쩡한 거냐?’
지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폭풍이 오기 전에, 폭풍이 덜 심한 곳을 찾았다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기다렸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똑똑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를 피한다.’**
우리는 흔히 똑똑함과 지혜를 혼동합니다. 직장에서 까다로운 상사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려 애씁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똑똑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떨까요? 그는 상사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거나, 혹은 당장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상황을 관망하며 더 나은 타이밍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성공과 돈에 대한 조급함 속에서, 우리는 때로 남들이 이미 구축해 놓은 성벽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내려고 합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 능력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미 잘 닦여 있는 옆길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번아웃에 이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라는 함정 자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찾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똑똑한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곧 지쳐버릴 것입니다.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다람쥐 지혜처럼 문제를 우회하거나, 피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폭풍 속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될 것입니다.